시동
그날 저녁, 허평은 추가찻집 뒤 창고에 있었다.
등잔 하나를 켜 두고, 마 영감이 그 옆에 앉아 있었다. 창고 벽을 따라 열아홉 해의 민원이 해마다 쌓여 있었다. 마 영감은 눈을 감은 채 손가락으로 허공을 짚었다.
"백학문이라. 있었소. 세 건."
"세 건이요?"
"열한 해 전 하나. 일곱 해 전 하나. 세 해 전 하나."
노인은 일어나 쌓인 묶음 사이로 걸어갔다. 굽은 허리로, 한 번도 헤매지 않고. 그리고 세 군데에서 한 장씩 뽑아 왔다.
허평이 등잔 아래 세 장을 나란히 놓았다.
[아들이 백학문에 입문한 뒤 소식이 없습니다.]
[딸이 백학문에 잡일하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이가 장터에서 백학문 무사들을 따라간 뒤로…]
세 장 모두 귀퉁이에 같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검토 중.'
"돌아온 아이는 없습니까."
"하나 있었소. 일곱 해 전 그 딸. 몇 해 뒤에 어미가 다시 와서 민원을 거두어 갔지. 딸이 장로 댁에서 시녀로 일한다고. 먹고사는 데는 걱정이 없다고."
마 영감이 종이를 쓰다듬었다.
"그 어미 얼굴이 웃는 얼굴이 아니었소."
허평은 세 장의 민원서를 오래 보았다.
재능 있는 평민 아이를 데려간다. 무공을 가르친다고 한다. 그러나 가르치지 않는다. 잡일을 시킨다. 그리고 쓸 만한 아이는 장로 가문에 보낸다. 시동으로, 시녀로. 부모에게는 은자 몇 냥을 쥐여 주고, 입문은 자유라고 한다.
'팔아넘기는 거군.'
그는 세 장을 접어 품에 넣었다.
"오늘 밤 가겠습니다."
마 영감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등잔 심지를 조금 낮췄다.
백학문은 무창 북쪽에 있었다.
담장이 높고, 대문이 크고, 마당이 넓었다. 하씨 가문의 후원을 받는 명문 문파답게 밤에도 순찰이 돌았다. 등롱을 든 무사들이 둘씩 짝을 지어 담장을 따라 걸었다.
오늘 밤 문주는 없었다. 하씨 본가의 연회에 나가 있었다. 대신 문파에서 가장 실력 있는 호위 무사들이 남아 문을 지켰다. 우두머리와 몇은 일류였고, 나머지도 이류 가운데서는 손꼽히는 자들이었다.
허평은 담장 위에 앉아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마당 안쪽, 장작더미 뒤에 낮은 창고가 하나 있었다. 문에 굵은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창고 앞에 무사 둘이 서 있었다. 창고 안에서 아이들의 기척이 났다. 셋, 넷. 그중 하나는 잠들지 않고 문틈으로 밖을 보고 있었다.
허평은 담장에서 내려왔다.
맨 처음 그를 발견한 것은 대문 쪽 순찰이었다.
"누구냐!"
등롱이 들렸다. 마당 한가운데에 검은 두건을 쓴 사내가 서 있었다. 얼굴 아래를 천으로 가리고, 손에는 칼집에 든 검.
"기와장이다!"
누군가 외쳤다. 호루라기가 울렸다. 사방에서 무사들이 뛰어나왔다. 다섯, 여덟, 열. 순식간에 마당이 검으로 둘러싸였다. 그중 몇 자루의 칼날에 희미하게 기운이 어렸다. 일류 고수의 검기였다.
"소문만 요란한 쥐새끼로군. 오늘 밤 여기서 잡아, 장로님께 바친다."
호위 무사 우두머리가 앞으로 나섰다. 그의 검이 바람을 갈랐다. 정확하고 빠른 찌르기였다. 일류 중에서도 위쪽에 드는 솜씨였다.
복면인은 칼집째 검을 들어, 그 찌르기의 옆면을 가볍게 툭 쳤다.
우두머리의 검이 옆으로 비껴 나갔다. 그리고 칼집 끝이, 비껴 나간 검을 따라 미끄러지듯 올라가 우두머리의 목덜미를 짚었다.
우두머리가 그대로 쓰러졌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쳐라!"
나머지가 한꺼번에 덤볐다.
그때부터는 싸움이라 부르기 어려웠다.
복면인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한 걸음 왼쪽으로, 반 걸음 뒤로. 칼집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한 명이 쓰러졌다. 목덜미, 옆구리, 어깨. 정확히 한 곳씩. 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쓰러진 무사들은 모두 숨을 고르게 쉬며 잠들어 있었다.
상대는 진지했다. 무사들은 이를 악물고 온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검기가 마당의 돌을 깎고 장작더미를 갈랐다.
복면인은 지루해 보였다.
검기가 스쳐 가도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비 오는 날 처마 밑에서 빗방울을 세는 사람 같았다. 하나, 둘, 셋. 칼집이 움직이고, 사람이 쓰러지고.
일곱 번째 무사가 쓰러졌을 때, 복면인은 창고 쪽을 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주 조금 놀랐다.
창고 문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남색 무복. 하나로 묶은 머리. 손에 가는 검.
유진이었다.
그녀는 창고 문을 등지고 서서, 무사 하나와 검을 맞대고 있었다. 숨이 거칠었다. 무복 소매가 찢어져 있었다. 상대는 일류 호위 무사였다. 그의 검에 실린 기운이 그녀의 검을 누를 때마다 유진의 발이 한 치씩 뒤로 밀렸다.
그래도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등 뒤의 창고 문을 지키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언제 들어왔는지 복면인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오늘 낮에 탁씨댁이 돌아간 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사라졌다. 혼자 백학문을 조사하러 왔다가, 해가 지기 전부터 담장 안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무사의 검기가 유진의 검을 내리눌렀다. 그녀의 무릎이 꺾였다.
복면인의 칼집이 움직였다.
마당 건너편의 무사가, 아무것도 닿지 않았는데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유진은 갑자기 사라진 압력에 휘청거리다 가까스로 섰다.
그리고 보았다. 마당 가득 쓰러진 무사들. 그 한가운데에 선 검은 두건.
"…당신."
그녀가 숨을 몰아쉬며 검을 들었다. 그 끝이 복면인을 향했다.
"당신 누구예요?"
복면인이 대답했다.
"기와장이입니다."
유진의 검 끝이 흔들렸다. 지난밤 지붕 위의 그 목소리였다.
복면인은 그녀를 지나쳐 창고 문 앞에 섰다. 칼집 끝으로 자물쇠를 한 번 툭 쳤다. 굵은 자물쇠가 두 동강이 나서 떨어졌다.
문이 열렸다.
창고 안에는 아이 넷이 있었다. 거적 위에 웅크리고 있다가, 문이 열리자 서로 껴안았다.
복면인이 무릎을 꿇었다.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탁원이 누굽니까?"
맨 앞에 있던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열두 살쯤, 깡마른 사내아이였다. 손바닥이 물집투성이였다. 무공 대신 매일 장작을 팼다는 손이었다.
"…저요."
"어머니가 기다리십니다."
아이의 입술이 떨렸다. 울지 않으려고 꾹 다문 입술이었다.
복면인은 유진을 돌아보았다.
"나머지 셋을 부탁드립니다. 대문으로 나가시면 됩니다. 아무도 막지 않을 겁니다."
유진은 마당을 보았다. 막을 사람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복면인은 탁원을 안고 담장을 넘었다.
아이는 그의 목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무창 시가의 지붕들이 발아래로 지나갔다. 바람이 차가웠다. 아이는 처음엔 눈을 꼭 감고 있다가, 조금씩 눈을 떴다. 발아래로 달빛에 젖은 기와지붕들이 물결처럼 흘러갔다.
"…아저씨."
아이가 작게 불렀다.
"예."
"아저씨, 이름이 뭐예요?"
복면인의 발이, 지붕 하나 위에서 멈췄다.
잠깐이었다. 바람이 한 번 지나갈 만큼.
"이름은 오래전에 두고 왔습니다."
아이는 무슨 뜻인지 모르는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복면인은 다시 걸었다.
다음 날 아침, 탁씨댁의 집 앞에 탁원이 서 있었다.
어떻게 왔는지 아이도 잘 설명하지 못했다. 밤에 누가 데려다주었다고만 했다. 지붕 위로 날아서 왔다고.
탁씨댁은 문을 열다 말고 주저앉았다. 아들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머리를, 어깨를, 물집 잡힌 손바닥을 차례로 만졌다. 정말 내 아들인지 확인하는 것처럼.
"밥은… 밥은 먹었니?"
처음 나온 말이 그것이었다.
탁원은 고개를 끄덕이려다, 결국 저었다. 그리고 그제야 울었다. 지붕 위에서도, 창고 안에서도 참았던 울음이었다. 탁씨댁은 아들을 끌어안고 한참 동안 놓지 않았다. 골목 사람들이 하나둘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같은 날 백학문의 다른 아이 셋도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남색 무복을 입은 젊은 여자가 데려다주었다고 했다.
백학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호위 무사 열 명이 하룻밤에 쓰러졌다는 말이 새어 나가면 문파의 체면이 무너질 것이었다. 하씨 가문도 조용했다. 집법전도 조용했다. 아무도 접수하지 않은 민원이었으니, 아무도 처리할 것이 없었다.
그날 아침 민원실에서, 허평이 유진의 팔을 보았다.
"소매가 찢어졌군요."
유진이 화들짝 놀라 팔을 감췄다. 남색 무복 소매가 길게 터져 있었다. 어젯밤 일류 무사의 검기에 스친 자리였다.
"어, 어제 빨래하다가요."
"빨래를요."
"빨래 방망이에 걸려서요. 세게 쳤더니."
"그렇군요. 방망이가 날카로웠나 봅니다."
허평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기 책상으로 돌아갔다. 유진은 소매를 움켜쥔 채 그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왠지 놀림을 당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무엇을 놀림당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곽 주임이 서랍에서 실과 바늘을 꺼내 던져 주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민원실 서기가 소매 터진 채로 다니면 민원인이 불안해한다는 거야."
그날 오후, 유진은 기운 소매로 민원실 자기 책상에서 보고서를 쓰고 있었다.
외근 보고서였다. 탁씨댁 민원. 아이 귀가 확인.
붓을 든 채 그녀는 오래 생각했다.
추가찻집. 소금 장수. 그리고 탁원. 세 건 모두 민원실에 들어온 민원이었다. 세 건 모두 맹이 '검토 중'으로 묻거나, 반려하거나, 접수조차 하지 않은 민원이었다. 그리고 세 건 모두, 밤의 기와장이가 해결했다.
기와장이는 민원서를 갖고 있었다. 도련님들에게, 정의검문에. 맹 안에서 오가는 서류였다. 그 서류가 어디서 어디로 가는지 아는 사람이었다.
'맹 안의 누군가야.'
유진은 확신했다. 총관부일 수도 있고, 장로 집무실의 관리일 수도 있었다. 민원 서류를 볼 수 있는 자리에 있는 누군가.
그녀는 고개를 들어 민원실을 둘러보았다.
곽 주임은 하품을 하고 있었다. 마 영감은 서고 앞에서 졸고 있었다. 허평은 허리에 고약을 붙인 채 찻잔을 들고 있다가, 차를 옷섶에 흘렸다.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보고서에 썼다.
[해결사: 미확인.]
그녀는 왜 그렇게 썼는지 스스로도 확실히 알지 못했다. 그 사람을 잡으면 민원실을 탈출할 수 있다고, 바로 어젯밤까지만 해도 생각했었는데.
지붕 위에서 그녀의 손목을 잡아 주던 손이 떠올랐다. 아이들 앞에 무릎을 꿇던 등이 떠올랐다.
유진은 보고서를 접어 곽 주임에게 내밀었다.
곽 주임은 그것을 보지도 않고 결재함에 넣었다. 하품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