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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주님, 민원 들어왔습니다

폐기 상자

7화 · 2026-10-26

그믐 전날 오후, 민원실은 초상집 같았다.

곽 주임은 공문을 몇 번이나 다시 읽고는 의자에 늘어져 천장만 보았다. 유진은 왕 부총관을 찾아 총관부까지 쫓아갔다가, 문지기에게 막혀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아무 말 없이 서고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제가 읽은 것만 마흔일곱 장이에요."

그녀가 무릎에 얼굴을 묻고 말했다.

"소 잃은 농부도, 다리 저는 아이도. 내일이면 그 사람들이 민원을 넣었다는 것도 없어지는 거잖아요. 처음부터 없던 일이 되는 거잖아요."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허평은 자기 책상에서 일어나 서고 쪽으로 갔다. 서고 문 앞에서 비질을 하던 마 영감 옆에 섰다. 그리고 아주 낮게 물었다.

"서고 창문은 어디로 납니까."

마 영감의 비질이 멈췄다. 노인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

"뒷담이오. 담 너머는 바로 시가 지붕이고."

"오늘 밤, 등 하나만 들어 주시겠습니까."

마 영감은 대답 대신 다시 비질을 했다. 쓱, 쓱. 그 소리가 대답이었다.

해 질 무렵, 허평은 추가찻집에 갔다.

새 지붕 아래에서 추 씨가 손님을 받고 있었다. 장사는 예전만 못해도, 들보 아래 자리는 늘 찼다. 사람들이 '기와장이가 고친 찻집'을 구경하러 왔기 때문이었다.

추 씨는 허평을 보자마자 반색했다.

"민원실 서기님! 차 한잔하세요. 오늘은 공짜예요."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

허평은 차를 받지 않고 말했다.

"찻집 뒤에 창고가 있으시지요."

"있지요. 영감 살았을 때 찻잎 말리던 데예요. 지금은 비어 있고."

"하룻밤만 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짐이 좀 많습니다."

추 씨는 무슨 짐이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허리춤에서 열쇠 꾸러미를 풀어, 그중 가장 녹슨 것을 내밀었다.

"하룻밤이 아니라 일 년이라도요. 서기님이 쓰시겠다는데."

"제가 쓰는 게 아닙니다."

"그럼 누가요?"

허평은 잠깐 생각했다.

"민원인들이요."

추 씨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열쇠를 거두지 않았다.


밤이 되었다.

그믐을 하루 앞둔 하늘에는 달이 실처럼 가늘었다. 본산의 등롱도 대부분 꺼졌다. 민원실 서고에만 불빛 하나가 있었다.

마 영감이 등잔을 들고 서 있었다. 허평이 그 앞에서 소매를 걷었다.

"영감님은 등만 들어 주십시오."

"둘이서 한다고 하지 않았소."

"둘이서 하는 겁니다. 영감님은 불, 저는 상자."

마 영감은 굽은 허리를 조금 펴고 허평을 보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등잔을 높이 들었다.

허평이 첫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민원서 묶음이 차곡차곡 들어 있었다. 열아홉 해 전의 종이들. 그는 묶음을 꺼내 보자기에 쌌다. 빈 상자의 뚜껑을 다시 닫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음 상자. 또 다음 상자.

보자기가 차면 허평은 그것을 등에 졌다. 그리고 서고의 작은 창문으로 나갔다. 마 영감이 등잔을 든 채 창밖을 내다보았을 때, 허평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차 한 잔 식을 시간쯤 지나, 허평이 창문으로 다시 들어왔다. 빈손이었다.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찻집까지 다녀왔소?"

"예."

"…무창 시가 반대편이오."

"지붕으로 가면 가깝습니다."

마 영감은 더 묻지 않았다. 허평은 다음 상자를 열었다.

찻집 뒤 창고에는 그사이 작은 등잔 하나가 켜져 있었다. 문간에 찻주전자와 잔 두 개가 놓여 있었고, 그 옆에 종이 한 장이 돌멩이에 눌려 있었다.

[민원인들 짐이라길래. 식기 전에 드세요. ― 추.]

허평은 그 종이를 한참 보았다. 그리고 차를 한 잔 따라 마셨다. 따뜻했다. 그는 보자기를 풀어, 마 영감이 일러 준 대로 해마다 따로 창고 벽을 따라 쌓았다. 첫해는 맨 안쪽, 그다음 해는 그 옆. 열아홉 해가 창고 한 칸을 채워 갈 것이었다.


밤은 길었다.

상자는 끝이 없었다. 열아홉 해 동안 쌓인 '검토 중'이었다. 허평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멈추지도 않았다. 상자를 열고, 묶음을 꺼내고, 뚜껑을 닫고, 보자기를 지고, 창문으로 나가고, 돌아오고.

열 개, 백 개, 삼백 개.

마 영감은 등잔을 든 채 그를 따라다녔다. 허평이 통로 안쪽으로 들어가면 노인도 안쪽으로, 위쪽 상자를 내리면 노인도 등잔을 높이 들었다. 굽은 허리로 한 번도 앉지 않았다.

한 번은 서고 창밖으로 등불이 지나갔다. 외당 순찰 무사 둘이었다. 무사 하나가 불 켜진 창문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영감님, 이 밤에 서고에서 뭐 하십니까?"

마 영감이 등잔을 든 채 귀에 손을 댔다.

"뭐라고?"

"이 밤에! 뭐 하시냐고요!"

"크게 말하시오! 안 들리오!"

"이 밤에! 서고에서!"

"아아, 서고! 내일 다 태운다잖소! 마지막으로 인사하는 거요! 열아홉 해를 같이 살았는데!"

무사 둘은 서로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혀를 차며 지나갔다. 그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천장 들보 위에서 보자기를 진 허평이 소리 없이 내려왔다.

마 영감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등잔을 들었다.

자정이 지나고, 허평이 오백 번째쯤 되는 상자에서 묶음을 꺼낼 때였다.

마 영감이 등잔을 가까이 들이댔다. 불빛이 허평의 손을 비췄다. 종이 묶음을 받쳐 든 두 손바닥.

손바닥 안쪽에 굳은살이 겹겹이 앉아 있었다. 손가락 뿌리를 따라 길게 박인 굳은살 위로, 그보다 두껍고 거친 굳은살이 또 덮여 있었다.

마 영감이 중얼거렸다. 아주 작은 소리였다. 혼잣말이었다.

"검성 어르신 손엔 검 굳은살만 있었는데."

등잔 불빛이 흔들렸다.

"이젠 도끼 굳은살이 앉으셨네."

허평은 묶음을 보자기에 넣었다. 매듭을 지었다. 등에 졌다.

그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창문으로 걸어갔다. 창틀에 발을 올리기 직전, 아주 잠깐 멈췄다. 뒤돌아보지는 않았다.

그리고 사라졌다.

마 영감은 빈 창문을 오래 보았다. 등잔을 든 손이 떨렸다. 노인은 그 손을 다른 손으로 꽉 붙잡았다.


새벽이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상자는 거의 다 비었다. 허평은 빈 상자들을 날라 소각장 마당에 차곡차곡 쌓았다. 아침에 무사들이 와서 불을 붙이기만 하면 될 만큼 반듯하게.

마지막 상자를 내놓고 돌아오자, 텅 빈 서고에 마 영감이 서 있었다.

노인은 서고 맨 안쪽 벽 앞에 있었다. 열아홉 해 동안 상자에 가려 한 번도 드러나지 않았던 벽이었다. 마 영감은 등잔을 내려놓고, 굽은 손가락 마디로 벽을 두드렸다.

똑, 똑.

속이 빈 소리가 났다.

"여기요."

노인이 말했다.

허평이 다가갔다. 벽판 하나가 다른 벽판보다 조금 새것이었다. 그는 손끝으로 이음매를 짚었다. 그리고 가볍게 밀었다. 벽판이 안으로 밀려 들어가며 틈이 생겼다.

벽 뒤에 좁은 공간이 있었다. 그 안에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다른 상자들보다 낡았다. 먼지가 두껍게 앉아 있었다. 뚜껑이 끈으로 묶이고, 그 매듭 위에 봉인이 찍혀 있었다. 붉은 봉인은 빛이 바랬어도 알아볼 수 있었다. 총관부의 봉인이었다.

상자 겉에 붉은 글씨가 쓰여 있었다.

[흑수곡 인근 민원 ― 폐기.]

그 아래에 날짜가 있었다. 종전 직후의 날짜였다. 민원실이 생기기도 전이었다.

허평은 그 글씨를 보았다.

흑수곡.

등잔 불빛 속에서 그 세 글자가 흔들렸다. 아니, 흔들리는 것은 불빛이었다. 아니면 그의 눈이었다.

"총관부가 폐기하라기에."

마 영감이 말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작고 갈라져 있었다.

"넣어 뒀지요."

노인은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왜 폐기하지 않았는지, 열아홉 해 동안 왜 여기 두었는지, 왜 오늘 밤 이것을 보여 주는지. 아무것도.

허평은 상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손을 뻗어 봉인된 매듭을 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멈췄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일류 고수의 검을 칼집째 자르던 손이었다. 서류 상자 천 개를 하룻밤에 비운 손이었다. 그 손이, 끈 하나를 풀지 못하고 떨리고 있었다.

허평은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눈앞에 강을 따라 점점이 박혀 있던 불빛들이 떠올랐다. 하나, 둘, 셋. 스무 해 전 둑 위에서 본 그 불빛들이었다. 그 불빛 아래 살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이 끈 하나 너머에 있었다.

결국 그는 매듭에서 손을 뗐다. 상자를 열지 않았다. 대신 두 팔로 상자를 안아 들었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아니, 가볍지 않았다.

"이것도 찻집으로 가져가겠습니다."

"그러시오."

마 영감은 등잔을 들어 길을 비췄다.


동이 텄다.

아침 일찍 소각장에 무사들이 왔다. 마당에 상자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무사들은 뚜껑을 열어 보지도 않았다. 반려된 서류였다. 불에 넣으라고 했으니 넣으면 됐다.

불길이 올랐다. 상자들이 탔다. 연기가 본산 하늘로 길게 올라갔다.

빈 상자가 타는 연기였다.

같은 시각, 총관부 부총관 집무실에서 왕 부총관이 보고서를 쓰고 있었다. 손목에 감은 천 위로 붓이 춤을 췄다.

[민원실 처리율. 1할 미만에서 9할 2푼으로 개선. 서고의 장기 미처리 민원 일괄 반려 후 소각 완료.]

그는 주판알을 마지막으로 한 번 튕겼다. 탁.

숫자가 딱 맞았다. 그는 흐뭇하게 웃었다. 맹 전체에서 꼴찌였던 부서를, 보름 만에 9할로 만들었다. 이 숫자를 보면 장로님들이 그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었다.

숫자는 맞았다.

서류만 없었다.


그보다 한 식경 전, 동트기 직전의 하급 직원 숙소.

유진은 밤새 잠을 설쳤다. 처리율 개선안 공문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수천 장의 민원서가 내일 아침 불에 탄다. 한 장 한 장 읽었던 사연들이.

동트기 직전, 그녀는 결국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찬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그리고 보았다.

맞은편 숙소 지붕 위로, 그림자 하나가 지나가고 있었다.

등에 무언가를 지고 있었다. 보자기였다. 산처럼 높이 쌓인, 사람 키보다 큰 보자기. 그런데도 그림자는 기와 한 장 울리지 않고, 그믐 직전의 어둠 속을 바람처럼 미끄러져 갔다.

등에 진 보자기 틈으로 종이 귀퉁이가 삐져나와 있었다. 붉은 도장이 찍힌 종이였다.

유진은 창틀을 붙잡았다. 손끝이 차가웠다. 붉은 도장. 민원실의 도장이었다. 아침이면 불에 들어가야 할 종이들이, 지금 저 그림자의 등에 업혀 시가 쪽으로 가고 있었다.

'…기와장이?'

그림자는 무창 시가 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유진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창문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