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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주님, 민원 들어왔습니다

수평

5화 · 2026-10-26

정의검문은 무창 시가 한가운데에 있었다.

크지는 않아도 이름 있는 문파였다. 제자가 쉰 남짓, 장문인은 무창에서 손꼽히는 일류 고수. 해마다 저잣거리에서 공개 비무를 열어 제자를 모으고 이름을 알렸다. 대문 오른쪽 기둥에는 세로로 긴 현판이 고리에 매달려 있었다.

[正義劍門.]

정의검문. 바른 뜻을 지키는 검의 문.

그 현판이 밤바람에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

그날 낮, 허평은 저잣거리 비무장 터에 가 있었다.

비무가 끝난 지 보름이 지났지만, 구경꾼들이 섰던 자리에 나무 울타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허평은 울타리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장 씨가 서 있었다는 자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울타리 기둥에 손톱만 한 쇳조각이 하나 박혀 있었다. 아무도 뽑지 않은 것이었다.

허평은 그것을 손끝으로 뽑아 들고 햇빛에 비춰 보았다. 부러진 단면이 비스듬히 매끄러웠다. 맞부딪혀 깨진 것이 아니라, 위에서 내리친 기운에 잘려 나간 단면이었다. 이 정도로 쇠를 자를 수 있는 것은 이 문파에서 한 사람뿐이었다.

'구경꾼 책임이 아니라, 장문인 책임이군.'

그는 쇳조각을 품에 넣었다. 지나가던 떡 장수가 무엇을 줍느냐고 물었다.

"확인해 볼 게 있어서요."

떡 장수는 별 이상한 노인 다 본다는 얼굴로 지나갔다.


자정이 가까웠을 때, 정의검문 대문 앞에 사람이 하나 서 있었다.

검은 두건, 얼굴 아래를 가린 무명천, 짙은 회색 옷. 손에는 칼집에 든 검.

문지기 제자가 등롱을 들어 비추다가 그대로 굳었다.

"바, 밤의…"

그 뒤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열흘 사이 무창에 그 소문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밤에 찾아와, 명문가 도련님 셋이 사흘 동안 남의 지붕을 고치게 만든 복면인. 얼굴을 본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등롱 불빛 아래 서 있는 사람은, 얼굴을 가린 채였다.

복면인이 말했다.

"장문인을 뵙고 싶습니다."

문지기는 대답 대신 뒤로 넘어지듯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당에 등롱이 하나둘 켜졌다. 제자들이 몰려나와 대문 안쪽에 반원을 그렸다. 그리고 그 가운데로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마흔 남짓, 다부진 몸에 짧은 수염. 허리에 찬 검집이 반들반들했다. 정의검문 장문인이었다.

장문인은 복면인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크게 웃었다.

"그대가 밤의 기와장이요? 소문을 듣고 키가 아홉 자는 되는 줄 알았소. 이렇게 평범할 줄이야."

복면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피해구제 청원서. 소금 장수 장득수. 오른손.

그리고 그 위에 찍힌 붉은 도장 두 개. 정의검문의 답변, '비무 구경은 자기 책임.' 그리고 무림맹의 '반려.'

장문인은 종이를 받아 보지도 않았다.

"아, 그 소금 장수. 그 일이면 무림맹에서도 반려가 났소. 끝난 일이오."

"반려는 돌려보낸다는 뜻이지요."

복면인이 말했다.

"그래서 돌려드리러 왔습니다."

장문인의 웃음이 조금 굳었다.

"돌려준다니, 무엇을?"

"책임이요. 구경꾼 책임이라고 하셨지요. 그 책임을,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마당이 조용해졌다. 제자들이 장문인의 눈치를 보았다.

장문인은 다시 웃었다. 이번에는 소리가 컸다.

"재미있군. 도련님 셋을 겁준 걸로 기고만장했나 본데, 나는 그 애송이들과 다르오."

그는 검을 뽑았다. 등롱 불빛에 칼날이 길게 빛났다. 제자들 사이에서 낮은 탄성이 흘렀다. 장문인의 검에 희미하게 기운이 어리는 것이 보였다. 일류 고수의 검기였다.

"이 검은 쇠도 벤다. 복면을 벗고 무릎을 꿇으면, 오늘 밤 일은 없던 걸로 해 주지."

복면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장문인이 한 걸음 내디뎠다. 그리고 검을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었다. 내리치기 위한 가장 큰 자세였다. 칼날 끝이 대문 기둥의 현판과 나란히 섰다.

"마지막이오. 무릎을 꿇…"

그 순간이었다.

복면인의 칼집이 움직였다.

옆으로, 한 번.

수평으로 그은 한 획이었다. 장문인의 정수리 한 뼘 위를 스치듯 지나간 한 획. 빠르지도 않았다. 제자들 눈에는 그저 칼집을 든 팔이 한 번 옆으로 움직인 것으로 보였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장문인은 검을 치켜든 자세 그대로 서 있었다. 무엇이 지나갔는지 몰랐다. 다만 머리 위가 이상하게 서늘했다.

그리고 무언가가 떨어졌다.

먼저 장문인의 손이 가벼워졌다. 치켜든 검이, 손잡이에서 한 뼘 위로 깨끗하게 잘려 있었다. 잘린 칼날이 그의 등 뒤로 떨어져 땅에 꽂혔다.

다음은 현판이었다.

대문 오른쪽 기둥에 고리로 매달린 세로 현판. 그 한가운데, '義' 자와 '劍' 자 사이가 가로로 갈라졌다. 아래 두 글자 '劍門'이 미끄러지듯 떨어져 땅에 부딪혔다. 위의 두 글자 '正義'만 고리에 매달린 채, 그네처럼 천천히 흔들렸다.

마지막은 등롱이었다.

마당 한가운데 선 돌기둥 등롱. 그 꼭대기의 지붕돌이 비스듬히 미끄러져 내려와, 쿵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등롱 안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검, 현판, 등롱. 셋 다 같은 높이에서 잘려 있었다. 자로 잰 듯이.

그런데 현판이 매달린 기둥에는 칼자국 하나 없었다. 현판만 베고, 그 뒤의 기둥 앞에서 멈춘 것이었다.

마당에는 숨소리조차 없었다.

장문인은 손잡이만 남은 검을 치켜든 채 굳어 있었다. 검기를 실은 쇠가, 칼집에 든 검에 잘렸다. 그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일류 고수였기에, 너무 잘 알았다.

자신의 머리가 저 높이보다 한 뼘만 높았다면.

복면인이 칼집을 거두었다. 그리고 고리에 매달려 흔들리는 '正義' 두 글자를 올려다보았다.

"남은 두 글자만큼은 하십시오."

그 말을 남기고, 복면인은 대문 밖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장문인의 손에서 손잡이가 떨어졌다. 그는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제자들은 아무도 그를 일으키지 못했다. 그날 밤 정의검문의 등롱은 새벽까지 꺼지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무창 시가는 또 술렁였다.

정의검문 장문인이 직접 수레를 끌고 남쪽 강가 골목으로 갔다는 것이었다. 수레에는 쌀과 약재와 은자 꾸러미가 실려 있었다. 장문인은 소금 장수 장 씨의 집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치료비, 그리고 손이 나을 때까지 일 년 치 생계비.

"그때 비무장에서 내 칼끝에 다치셨다 들었소. 늦었소. 미안하오."

장 씨는 왼손으로 은자 꾸러미를 받아 들고 한참을 서 있었다. 연이가 아버지 뒤에 숨어서 장문인을 올려다보았다.

시장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정의검문 장문인이 고개를 숙였대."

"그것도 소금 장수한테."

"현판 봤어? 반이 잘려 나갔더라. '정의'만 남았어."

"검이랑 등롱이랑 다 같은 높이로 잘렸대. 자로 잰 것처럼 수평으로."

정의검문 대문에는 '正義' 두 글자만 남은 현판이 그대로 걸려 있었다. 제자 하나가 떨어진 '劍門'을 다시 붙이자고 했다. 장문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둬라. 남은 두 글자를 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그날 오후, 무창의 무림인들은 그 한 획에 이름을 붙였다.

'수평(水平).'

해가 지기도 전에 골목 아이들 사이에 새 놀이가 생겼다. 나뭇가지를 옆으로 한 번 긋고 "수평!" 하고 외치면, 맞은편 아이가 이마를 짚고 쓰러지는 놀이였다. 아무도 다치지 않는 놀이였다.


민원실에는 그 소식이 점심 무렵에야 닿았다.

곽 주임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손에 시장에서 사 온 만두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들었어? 들었어? 밤의 기와장이가 또 나타났대. 이번엔 정의검문이야! 그러니까 내 말은~ 소금 장수 그 민원 말이야!"

유진이 벌떡 일어났다.

"장 씨 아저씨요?"

"배상을 받았대. 장문인이 직접 갖다 줬대. 치료비랑 일 년 치 먹고살 거랑."

유진은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천천히 허평을 보았다.

허평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입가에 침까지 흘리고 있었다.

유진의 눈빛이 잠깐 날카로워졌다. 그러다 이내 풀렸다. 침 흘리며 자는 쉰다섯 살 서기가 일류 고수의 검을 벤다는 생각은, 아무래도 말이 안 됐다.

'…어제 그 말은 그냥 한 말이겠지. 기와장이가 소문을 들은 거야.'

그녀는 자리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엄청난 고수가… 민원실 일을 해 주네."


해 질 무렵, 장 씨의 딸 연이가 혼자 민원실에 왔다.

아이는 창구 앞에서 쭈뼛거리다가, 접힌 종이 한 장을 내밀고는 도망치듯 뛰어 나갔다.

곽 주임이 종이를 펼쳤다. 삐뚤삐뚤한 글씨였다. 몇 번이나 고쳐 쓴 자국이 있었다.

[민원실 아저씨들께.
아빠 손 고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제가 소금 안 지고 서당 가도 된대요.
무림맹은 좋은 데예요.
장연이 올림.]

곽 주임은 그 편지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민원실에 들어온 지 열아홉 해. 그동안 받은 종이는 수천 장이었다. 전부 민원서였다. 고맙다는 편지는 한 장도 없었다.

"…무림맹은 좋은 데래."

그가 웃었다. 웃는데 목소리가 이상했다.

곽 주임은 일어나서 벽으로 갔다. 초대 맹주 어록 액자 바로 옆에, 아이의 편지를 붙였다. 귀퉁이를 몇 번이나 꾹꾹 눌러 붙였다.

그리고 책상으로 돌아와 서랍을 열었다. 늘 꺼내 두던 '검토 중' 도장을 집어 들었다. 손잡이가 반들반들 닳은 도장이었다.

곽 주임은 그 도장을 한참 보다가, 서랍 안에 넣었다.

서랍이 닫혔다.

유진이 그것을 보았다. 마 영감도 서고 문틈으로 보았다. 허평은 책상에서 고개를 들고, 액자 옆에 붙은 편지를 보고 있었다.

[무림맹은 백성의 방패다.]

[무림맹은 좋은 데예요.]

두 장의 종이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허평은 그 둘을 번갈아 보다가, 아무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주판 소리가 먼저 들어왔다. 탁, 탁, 탁.

"여러분! 좋은 소식입니다!"

왕 부총관이 두루마리를 흔들며 들어왔다.

"소금 장수 건, 반려했던 것이 배상으로 끝났더군요. 곽 주임이 '처리'로 종결했다고요? 반려든 처리든 숫자는 같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곽 주임이 어색하게 웃었다. 왕 부총관은 개의치 않고 새 두루마리를 펼쳤다.

"그래서 이번에는 더 크게 갑니다. 이름하여, 처리율 개선안!"

탁.

"서고에 쌓인 10년 넘은 민원을, 이달 말까지 전부 반려 처리합니다."

서고 문 안쪽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먼지떨이였다.